春日大社国宝殿

1200년~1500년대 초의 일본 갑옷
13세기부터 16세기 초 전장에서 흔히 입는 갑옷은 세 종류였습니다. 그 시절의 전쟁은 대부분 기병과 보병이 섞인 혼성 부대 간의 소규모 접전이었습니다. 무사들이 착용한 갑옷은 임무에 따라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가슴 보호대(흉갑), 어깨 보호대, 대퇴부 보호대와 투구로 이루어졌습니다. 각 부분은 수백에서 수천 장의 질긴 가죽 또는 철 미늘을 엮어 보강되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갑옷은 당시 체구가 작은 말이 나를 수 있을 만큼 가벼웠지만, 그 시절 주요 무기였던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몇 세기 동안 발전을 거듭하며 갑옷은 더 가볍고 튼튼해졌으며 착용하기도 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기본 디자인은 1500년대 중반에 유럽에서 총기가 들어올 때까지 큰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총기라는 치명적인 신기술의 도입으로 일본 갑옷의 디자인은 변경될 수밖에 없었고, 전투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죽과 직물은 비바람에 노출되거나 불에 의해 훼손되기 쉬웠기에 이 시기의 갑옷 한 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갑옷 대부분은 불교 시설이나 가스가타이샤 신사와 같은 신도(神道) 시설에서 보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사에 소장된 갑옷과 무기, 기타 유물들은 무가 문화와 기술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오요로이(大鎧)
오요로이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고위급 무사들이 착용한 갑옷입니다. 이 갑옷은 활시위를 당겨 쏘는 동작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가슴 보호대는 몸통을 감싸는 형태로 오른팔 아래에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한 약점은 와이다테라고 하는 겨드랑이 보호대로 가려졌습니다. 따라서 오요로이를 착용한 기마 궁수는 활을 쏠 때 적에게 노출되는 왼쪽 몸을 최대한 보호해야 했습니다. 2개의 추가 보호대가 흉골과 가슴 위쪽의 노출 부위를 가려 주었습니다.

오요로이 갑옷은 상자 모양의 디자인과 다리 안쪽을 일부 가릴 수 있는 구사즈리(4개로 나뉘어 갑옷의 허리 아래를 덮는 치마형 방어구)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소수 정예 부대의 갑옷인 오요로이에는 정교한 장식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이상 전장에서 오요로이를 입지 않게 된 이후에도 고위급 무사들은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로 의식이나 행렬이 있을 때 오요로이를 착용했습니다.

도마루(胴丸)
도마루 갑옷은 전장에서 보병이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개발되었습니다. 보다 가볍고 저렴했으며 더욱 움직이기 쉬워진 갑옷이었습니다. 도마루는 오요로이 갑옷과 마찬가지로 몸통을 감싸고 오른팔 아래에서 연결된 하나의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요로이와 달리 포개지는 형태로, 공격에 노출될 수 있는 트인 부분이 없었습니다. 도마루 갑옷에는 구사즈리라고 불리는 늘어뜨리는 부분이 여러 개 달려 있어 4개로 이루어진 오요로이와 비교하여 대퇴부를 더 철저히 가려 주었습니다.

일반 보병용 갑옷인 도마루는 보통 어깨 보호대나 투구 없이 착용했으며, 일반적으로 보호용 가죽 또는 철 미늘이 더 적게 사용되었습니다. 점차 고위급 무사들도 기동성이 더 좋은 도마루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도마루 요로이로 알려진 하이브리드 디자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라마키(腹巻)
하라마키 갑옷은 도마루보다도 더 가볍고 제작 단가가 낮았으며, 1300년대 초에 도입된 이후로 하급 보병들이 착용하는 기본 갑옷이 되었습니다. 하라마키는 도마루와 마찬가지로 몸을 감싸는 일체형 갑옷이었지만 오른팔 아래가 아닌 등에서 연결되는 형태였습니다. 이 차이점이 하라마키의 큰 특징입니다.

この韓国語解説文は観光庁の地域観光資源の多言語解説整備支援事業で作成しました。